교회 이야기

제주 성 이시돌쎈타 전시관을 둘러보며 성지순례길 체험 행사를 갖어 봅니다.

환희의정원 2013. 10. 9. 21:51

 2012년 11월에 찾아 보았던 곳인데

2013년 10월 다시 찾아간곳을 재조명 하며

기독교 신앙인이 되면서 신교 구교를 떠나서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생애를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110번지

064-796-4181-2

성 이시돌 목장 푸른 초원위에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청동으로 또는 목재로 재현해 놓은곳이

마치 이스라엘 성지순례길에 온것같은 충만한 은총의 동산을 한바퀴 둘러 보고 왔습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탄생을 재현 해놓은곳.

 

 

 

 

 

 

 

 

 

 

 

 

 

 

 

 

 

 

 

 

 

 

 

 

 

 

 

 

 

 

 

 

 

 

 

 

 

 

 

 

 

 

 

 

 

 

 

 

 

 

 

 

 

 

 

 

 

 

 

 

 성만찬 을 재현한 식탁과 의자에 앉아

우리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처럼 ...

또는 가롯 유다처럼 이중적인 마음을 갖고 살고 잇는건 아닌지

생각좀 하고 살아야 할것 같습니다..이  건방진 오마니!!!ㅎ

제자들에게 발을씻겨주시는 좋은 예수님!!

 

 

십자가 양 옆에 강도같은 오마니

잘못살아온 강도의 회개를 받아주시는 좋으신 예수님 !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란 음성을 듣는

평안한 밤이 되길 바라면서....

 

 

제주여행에서 종교를 초월해서 천주교 성지순례길에 오른다는것도

의미있는 순례길이란 생각들어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  입니다

 

시골스런 목장 냄새를 맡으며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성 이시돌 쎈타 전시관과 새미 은총에 동산

십자가의길 을  체험해보며

삶의 가치관을  바로 세워 보는 여행길이 였습니다

 

제주 화순문화마을에서

 

<성 이시돌 역사>

1954년 4월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 신부는 제2의 고향이 된 제주도에 발을 딛게 되었다. 당시 제주도민들은 보리나 조 농사를 짓거나 해년들이 바다에서 잡이들이는 해산물을 팔아 살아갔지만 살림이 매우 어려웠다.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보며 신부님은 생산적인 일을 벌여 제주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 해 주고 싶었다. 영혼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물질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시절에 신부님이 눈을 돌린 곳은 한라산 중산간의 넓은 평원이었다. 제주도는 한라산과 해안사이에 넓은 벌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벌판은 돌보는 사람이 없어 말이나 소의 방목지 정도로 이용되고 있을 뿐 황무지로 내버려지고 있었다.

신부님은 이따금씩 중산간 지역에 올라갔다가 보았던 사막처럼 넓은 황무지가 개간만 하면 훌륭한 목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목축을 통한 제주의 가난구제가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신부님의 고향 아일랜드 도네골에서 수의사인 아버지와 형, 삼촌들이 깊은 땅속에서 흙을 파내어 자갈밭에 깔고 목초를 가꾸어 소와 양의 사료를 길러내는 것을 본 기억을 떠올리며, 신부님은 제주도의 자연환경이 도네골보다도 좋기 때문에 목축업이야 말로 한번 펼쳐볼 만한 사업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그러던 중 우여곡절 끝에 정물이라 불리던 곳에서 돼지를 기르기 시작했다. 그곳은 군인들이 주둔하던 막사가 있어, 우선 판자와 가마니로 지붕을 만들고 돼지를 들여놓았다.

그리고 1961년 11월 성이시돌 중앙 실습목장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시돌은 중세 스페인의 농부로서 후에 가톨릭 교회 농민의 주보성인이 된 분이다. 신부님은 목장의 이름을 이시돌이라 붙이면서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시리라 믿었다. 당시에는 땅값이 아주 싸서 적은 돈으로 많은 땅을 살 수 있었고, 신부님은 또한, 고향 아일랜드 신자들에게 모금활동을 펴서 처음 사업자금이 마련되었다.

성이시돌 목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나가자 설립자이신 맥그린치 신부님은 이시돌 목장안에 농업기술 연수원을 지었다. 처음에는 농민들에게 농사짓는 법, 축산업을 가르쳐주기 위해 세웠던 농업기술 연수원을 피정의 집으로 바꾸고 건물을 확장하여 찾아오는 신자들이 주님을 만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꾸며 놓았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신자는 물론 제주도에 여행을 온 신자들이 조용히 쉬어가며 기도도 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피정의 집이 세워지자 제주교구에서 열리는 많은 피정 및 행사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사람들로 피정의 집은 항상 만원이었다.

특히, 신부님은 피정에 온 신자들이 진정한 통회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고 돌아가는 것을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언제나 양떼를 돌보는 목자처럼 신자들이 영성적인 가난이 더 문제가 되며, 육체의 질병은 의사가 고치지만 정신의 질병을 고치는 것은 교회가 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신부님은 신자들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옮긴글